강화교산교회 선교역사관으로 개조된 옛 교산교회 전경
▶ 김상임전도사
김상임은 다리목이라는 마을의 서당훈장으로 이승환이 개종한 것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유학자입니다,
그는 어지러운 세상을 떠나 십승지지를 찾는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예수를 영접하는 것이 십승지지라는 것을 깨닫고 개종을 하게 되는 인물입니다.
그 후 김상임은 자신의 토지를 교회에 헌납하고 신학을 공부하여 전도사로 강화복음화를 위해 헌신하게 됩니다.
기독교를 비판할 목적으로 한문성경을 구해 읽기 시작하였는데, 성경을 읽는 중에 복음의 실체를 파악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성경을 읽는 중에, 그 무렵 탐독하고 있던<정감록>에 나오는 '십승지지'란 비결이 성경에 나오는'십자가지도'라는 사실을 깨닫고 개종을 결심한 것입니다.
십승지지 : 말세에 환란을 피할 수 있는 열군데 피난지
궁궁을을 : 재앙으로 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부적 이나 주문
강화홍의교회
홍의교회입구에 세워진 기념비에는 홍의교회의 역사와 그 특별한 사역에 대한 내용이 잘 적혀 있습니다. 그중에 돌림자신앙과 빚 탕감이야기, 고씨부인의 장례식 이야기는 방문하시는 순례자 들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 돌림자신앙
홍의교회 초대교인들의 개명은 세례와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세례를 받은 기념으로 새이름을 지어 갖기로 한것입니다. 이는 신학적으로 천주교회나 성공회의 '본명'(세례명)전통과 같은 맥락이지만, 그 표현 방법에서 한국의 전통 작명법을 취하였습니다.
- 성(姓)은 조상에게 물려받은 것 이기에 바꾸지 않았다.
- 마지막 자를 모두 한일(一)자로 통일하였다.
- 가운데 자를 제비뽑기로 뽑았다.
세례명 : 박능일, 권신일, 권인일, 권문일, 김경일, 장양일, 주광일 등
☞ 빛 탕감이야기
하루는 성경을 읽다가 주인에게 큰 빛을 지고 있던 종이 주인으로부터 빛을 탕감을 받은 후에 자기동료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않아 불의한 종이라 꾸중을 듣고 책망 받은 이야기를 읽고 종순일은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시켰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주인이고 자신은 무서운 죄의 빛을 하나님께 지고 있었는데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용서함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동료들이 있어, 그가 하나님께 진 빛에 비하면 사소한 것이지만, 동료들이 진 빛을 탕감해 주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에게 돈을 빌려 간 사람들을 모두 자기 집으로 불러모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성경 이야기를 들려준 후 자기 생각을 밝혔습니다. 그는 채무자들에게 이제는 빛을 갚지 않아도 된다고 선언하고는 그들이 놀란 눈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차용증서들을 꺼내 불태워버렸습니다. (선교연회보고서,1901.37쪽)
홍의교회 뒷편 묘역에 안장된 2대교역자 김경일 전도사의 묘소입니다.
☞ 강화 최초 기독교식 장례
1898년 1월에 있었던 고씨부인의 장례식은 강화 최초 기독교식 장례로 치루어 졌다,
- 곡을 하지 않고 찬송을 하였다.
- 상복은 입되 남자들의 두건에는 십자가를 그렸다.
- 묘비 대신 십자패를 세웠다.
홍의교회의 뒷 동산에 안장된 홍의교회의 개척자 박능일전도사의 묘역 입니다.
☞ 박능일전도사
박능일은 홍의마을의 훈장으로 교산교회의 김상임과는 잘 아는 사이 였다고 합니다. 김상임이 서양귀신에 씌웠다는 소식을 듣고 김상임에게 쫓아가 그를 건져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박능일 역시 복음을 받아 들이게 되고 후일 박능일은 강화복음화에 큰 역활을 하게 됩니다.
강화 성공회 성당
강화성공회성당은 멀리서 보면 절 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가까이 와 보면 교회 건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 1893년 성공회는 왕란도신부를 파송하여 강화외성 출입문인 진해루 밖에 있던 나루터에 위치한 한옥 한 채를 마련하여 기도처와 거처를 삼고 선교를 시작하였다. 이듬해 고요한 주교가 이 집을 성니콜라회당으로 명하고 선교사업을 시작하였다.
왕란도신부는 나루터에 왕래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하여 선교를 시작하였고, 떠돌이 걸식하는 고아들을 모아 약육하며 선교활동을 하였는데 당시 강화에 있던 조선수사해방학당 교수로 영국인 교관들이 와서 활동하고 있어서 영국성공회 선교사들이 관청과 주민들로 부터 큰 저항을 받지 않고 강화주민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할수 있었다.
용흥궁
어린시절 나무꾼으로 살던 강화도령이 어느날 갑자기 왕이 되었습니다. 철종이 왕이 되기전 살던 집, 원래의 집은 작은 초가집이였으나 철종이 왕이 된후 강화유수 정기세가 이렇게 큰 저택으로 중건하였습니다.
양화진선교사묘역
오늘의 일정은 양화진선교사묘역에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강화선교역사와 함께 즐기는 강화역사탐방은 우리나라의 근대사는 기독교사가 많은 부분을 기여하였음을 알수 있었습니다.
강화흥천교회
강화에는 기독교문화유산이 곳곳에 세워져 있습니다. 위의 사진은 흥천교회의 전경사진입니다.
<참고문헌 : 행복을 선택한 사람들 (홍의교회 116년 이야기)>
국내기독교성지순례전문 돌봄여행사 1544-9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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