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복목사

김정복목사의 순교사


1950년 6월 25일 새벽 이북공산군이 불법 침략하고 파죽지세로 남하하여 7월 30일에 16, 7세의 인민군 40여명이 소록도까지 침입하여 56일간 공산정권하에 있게 되었다.

 

병원 내는 인민위원회, 청년동맹위원회가 조직되고 추종자들과 불신자들이 규합하여 교회를 탄압하기 시작했고 세례교인들을 강제 이동시켜 교회간판을 내리고 인민공화국 간판을 달고 찬송과 기도를 중지시키고 인민공화국 노래를 가르치게 되었다.

 

김정복 목사님은 모든 활동을 중지 당했다.

교인들은 잠시라도 피산하시라고 눈물로 청원했으나 목사님은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연약한 양떼를 버릴 수가 없노라"고 거절하시고 "내 늙은 목숨 살자고 도망갈 수 없다"시며 평소에 늘 기도하시던 굴날뿌리(신생리 마을 뒤편 바위)동굴에서 금식하며 기도하시다가 평소 그 사실을 알고 있던 원생 청년들의 밀고에 의해 체포되어 강제로 고흥 정치보위부로 끌려가셨으니 그 날이 1950년 8월 28일 이었다.

 

끌려가는 목사님을 울부짖으며 땅을 치며 통곡하는 성도들을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뒤돌아 보시며 "사랑하는 소록도 성도들아 신앙절개 굳게 지켜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 하나님이 위로해주실 것이니 안심하라"하시며 손을 흔들고 가신 길이 소록도 마지막 이별의 길이었다.

 

병원안에서는 9월말에 교회 장로, 집사들을 처형시키려고 인민재판이 공회당 앞뜰에서 진행되고 있을 때, 머지않아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되니 안심하라는 삐라가 비행기에서 뿌려졌고 소록도에서는 그것을 받아보았다.

 

공회당에서 인민재판을 진행하던 지방 빨개이와 인민군들은 금방 얼굴이 파래지며 모든 재판을 끝도 내지 못하고 후퇴하기 시작했는데 그날이 9월 27일이었다.

 

전의를 상실한 인민군들은 퇴각하면서 고흥경찰서에 수감중이던 김정복 목사님을 경찰서 뒷산으로 끌고가서 무차별로 머리에 관통상을 입히니 무릎을 꿇으시며 기도하시는 모습으로 순교하셨다.

 

목사님은 그렇게도 사랑하며 따뜻한 품으로 안아주던 소록도 성도들을 다시 한번 만나보지 못하고 순교의 제단위에 붉은 피를 뿌리며 그 분이 늘 즐겨 노래하던 천국을 향하여 떠나가시니 향년 69세요 그 날이 1950년 9월 30일이었다.

 

1951년 1월 23일 고대작(高大作)목사님이 부임하여 3월 3일에 중앙예배당에서 김정복 목사님의 순교 초도 예배를 드리니 4천여 성도가 눈물 흘리며 애도했고 김정복 목사님의 순교신앙을 계승할 것을 다짐하고 다짐했다.

 

1977년 9월 30일 27년만에 김두영 목사님에 의해 김정복 목사님 순교기념비를 중앙예배당 앞 뜰에 세워 그 높은 순교신앙을 영원토록 기리며 계승하고자 하여 그 비문에 "샛별"이란 제목의 시문을 기록했다.


소록도중앙교회 마당에 세워진 순교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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